JTBC '팬텀싱어2'에서 우승한 크로스오버 그룹 포레스텔라 멤버 강형호(34)는 '의문의 사나이'다. 날 것을 한껏 베어 문 그의 음색은 당장이라도 스피커를 폭발시킬 만큼 강한 록의 면모를 보이다가도, 이내 오페라 속 바리톤으로 변신해 주변을 차분히 '정리'한다. 싱글 곡의 더블 톤, 그를 이렇게 수식해야 할지 모르겠다.
방송에서 그를 각인시킨 명장면이 '더 팬텀 오브 디 오페라'(The Phantom Of The Opera)를 소화할 때다. 유튜브에서 이미 수백만의 조회수를 기록한 이 영상은 '경이롭다'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팔세토(falsetto·두성을 이용해 더 높은 고음을 내는 남성의 가성)에서 바리톤까지 그의 진가가 어김없이 드러나는 보기 드문 무대다.
그가 '의문의 사나이'인 것은 팔색조 매력을 품고 있어서다. 하나로 딱 설명하기 어려운 여러 매력과 특징들이 어지럽게 혼재돼 있지만, 그 지향점은 분명하고 역할은 정확하다.
포레스텔라를 통해 보편적이고 친근한 클래식 협업에 충실하다면, 오는 10일 발매될 그의 첫 솔로 싱글 'ID:PITTA'는 숨겨진 그의 록 본능을 발휘하는 '자유의 날갯짓'이다. 팔색조(PITTA)의 향연이 이제 시작되는 걸까.
"아직 음반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조금 두려워하는 부분이 있다면, 지금껏 많은 분들이 포레스텔라의 멤버로 사랑해주셨는데, 솔로로 다른 음악을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름도 강형호가 아닌 'PITTA'(피타)로 바꿔 활동하고, 그룹과 솔로 활동에서 제 역할도 정확하게 나눠 할 거예요. 솔로 음반이 친숙한 음악이 아닌 마니아 취향에 가깝겠지만, 무언가 선명하게 그릴 때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적지 않아요."
지난달 26일 선공개한 '더 네이션'(The nation)에서도 증명하듯, 미리 들어본 신곡 6개에서 보여주는 그의 가창은 역동적이고 강렬하다. 노래 한 곡을 구성하는 모든 마디가 팔색조의 향연이다. 곡 도입의 분위기, 강약 조절, 들숨과 날숨의 타이밍, 가사에 걸맞은 톤의 변화 등 다양한 색깔의 계산된 듯한 '의도의 가창'은 듣는 이의 감정까지 조절하려는 듯 치밀하다.
"솔로 음반은 가창뿐 아니라 믹싱, 마스터 등 수많은 제작 과정에서 신경을 많이 썼어요. 제 이름을 걸고 하는 음반이어서 더 제 스타일로 끌어와야 한다고 생각했고 한 곡 한 곡에 모든 가능한 노력을 다 쏟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하다 보니, 제작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졌어요."
하지만 이 음반은 그에겐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완전 마니아 스타일로 가고 싶었으나 대중의 입맛을 고려한 선에서 절충한 점이 특히 그렇다. 그는 "기존 제 팬들이 너무 놀라지 않게 이질적이지 않으면서 록적인 모습을 담았다"며 "스트레이트 들어가기 전에 잽을 날린 정도로 봐주시면 될 것 같다"고 웃었다.
"제가 생각하는 록은 틀에 갇힌 정형화는 아니에요. 지금의 음악은 장르적으로 경계도 많이 허물어진 상태여서 어떤 배합으로 멋진 웅장함을 선사할 수 있을지가 관건일 수도 있고, 때론 록이지만 슬픔의 느낌이 더 묻은 짙은 자주색이 나올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에 록의 전통적 편견에 갇힐 필요는 없다고 봐요. 록을 대할 때 전 확실히 더 자유로워지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걸 느껴요."
클래식이든 팝이든 록이든 그의 무대는 언제나 가슴 졸인다. 노래하는 그 순간과 인생을 맞바꾸려는 사람처럼, 혼신의 힘을 다하기 때문이다. 피를 토할 때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각오가 서릴 만큼 모든 무대가 격정적이다. 그런 드라마틱한 무대에 대해 기승전결을 쓸어 담은 '3분의 연기' 같다고 나름 호평하자, 그는 조심스럽지만 확고한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사실 연기라는 걸 싫어하는 편이에요. 제가 연예인이라는 사실도, 카메라를 의식하는 것도 싫어하죠. 연기란 노래에 빠지지 않을 때 나오는 코스프레 같은 거예요. 진짜 과몰입하면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안에 있는 걸 다 쏟아내면 되니까. 슬픔을 노래할 때 그런 감정에 맞춰진 발성으로 노래하는 것과 자기 안의 슬픔을 꺼내는 사람의 노래는 다르다는 걸 대중이 이젠 더 잘 아는 것 같아요."
공대 출신 대기업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강형호는 클래식을 배워 본 적 없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자신이 얼마나 클래식에 형편없는지 시험하기 위해" 도전한 경연에서 기존 클래식과 다른 차별화된 창법에 되레 점수를 얻으며 포레스텔라로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그는 "클래식을 잘 몰라 인센티브를 많이 받은 것 같다"고 겸손해했다.
화학 전공은 그룹의 화성을 극대화하는 데 일조했다. 포레스텔라 멤버 4명의 화음이 '감'으로 진행되던 방식에 이공계의 소리 밸런스 분석을 넣자 더 세련되고 탄탄하고 안정감있는 화음으로 새로 태어났다.
"'소리가 왜 예쁘게 안들리지?'를 놓고 고민할 때 음파를 분석해 대역을 잘 배치하니 더 좋은 결과물이 나왔어요. 공학의 도움을 얻은 셈이죠. 하지만 과학이 도와줄 수 있는 비중도 80% 정도예요. 얼마나 더 이성의 끈을 놓고 해방된 상태에서 내 감정을 표현하느냐가 마지막 순간을 좌우한다고 생각해요."
포레스텔라에만 팬들이 몰릴 줄 알았는데, 막상 솔로 음반 기념 콘서트(13일 서울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 소식을 알리자 티켓 판매 1분만에 1000여석(띄어앉기 포함)이 금세 매진됐다. 어쩔 수 없이 리허설로 쓰려던 12일 무대까지 열어야 했다.
1시간 30분간 마주 앉아 대화하는 동안, 그에게선 부산 출신의 걸쭉한 사투리도 연예인 같은 스타 의식도 없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할 땐 영락없이 한 수 더 배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음악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기반을 잘 쌓아서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많은 수련이 필요한 셈이죠. 한 걸음 한 걸음 조금씩 장인정신을 갖고 접근하고 싶어요."
1시간 더 있다가는 팔색의 매력이 팔십색으로 번질 것 같았다.